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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irs of HotdogAROUND ME/My Thoughts 2006. 5. 9. 04:39
아주 전형적인 미국 간식이자 햄버거와 함께 정크 푸드 분야의 곁가지를 틀고 있는 핫도그.
그러나 핫도그는 웬지 햄버거와는 다른 뉘앙스의 기억으로 나에게 남아 있는 간식이기도 하다.
95년에 뉴욕에 어학연수 갔을때 학교 구내에 늘 핫도그와 빅사이즈 콜라캔을 팔던 흑인 아저씨가 있었는데, 아주 좋은 간식이었다. 구내 식당을 가자니 간식거리를 찾기에는 너무 비쌌고, 그냥 컨비니언스 스토어에서 뭘 사먹자니 귀찮았고... 이럴때 그 아저씨에게 3달러 남짓 쥐어주면 쓱삭쓱삭 큼지막한 핫도그를 만들어서 콜라와 함께 주는데, 그 옆에서 대충 씹어먹으면서 통하지도 않는 영어로 그 아저씨와 어영부영 대화도 나누던 기억이 난다. (그 아저씨도 크리스천이라고 했던가.)
지난해와 올해 GMA때문에 내시빌을 간 동안에도 핫도그의 위력은 여전했다. 의외로 야밤활동이 없는 이 동네에서 비싼 호텔 룸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면, 최고의 간식은 여전히 핫도그였던 것이다. 콘서트를 다녀오고 나서 녹초가 되면 의례히 편의점에서 핫도그를 사와서 게걸스럽게 먹어댔고, 재호는 옆에서 "형! 왜이래요! 진정해요!"라며 나를 걱정했다.
핫도그는 말그대로 셀프조립(?)이 가능한 음식이다. 피클, 머스타드와 케첩도 원하는대로 얼추 배치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완제품인 샌드위치나, 주방장이 만들어줘야 하는 햄버거와는 다르다. 그렇기에 그 '조립'의 과정동안 배를 채우는데 대한 묘한 기대감이 생기는데, 이것이 맛의 반을 차지하는 것같다.
요즘 한국에서 굵직한 핫도그를 볼 수 있는데는 역시 극장. 그러나 요즘 극장 핫도그에는 피클이 없다. 삼겹살 먹을때 야채랑 같이 먹어라...이런 충고에 따라오는 맥락과 비슷하기도 한데, 아무튼 피클없이 케쳡과 머스타드만 뿌려먹는 핫도그는 분명 뭔가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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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패밀리 마트에 '핫도그 콤보세트'가 생긴것을 봤다. 2천원에 콜라캔과 커피믹스까지. 꽤나 푸짐하다.
사와서 보니 콜라는 요즘 유행하는 '제로 콜라'. 맘에 안든다. 시커먼게 콜라가 아닌 무슨 간장캔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핫도그는 피클이 들어 있다. 요목조목 각종 야채를 다 썰어 담은 것이 아닌, 말그대로 오이를 갈아 담근 순수 피클 드레싱말이다. 조립을 마치고 나니 빵의 폭이 좀 좁긴 하지만, 나름 오리지널 핫도그의 분위기를 풍긴다. 좋은 야참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핫도그를 먹었을때 음미한건 쫀득한 소세지나 피클, 케쳡이나 머스타드가 아닌 조금은 바쁘게 돌아가는 그 분위기에서 잠시의 망중한 속에서 즐긴 여유로움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그렇기에 지금 어디에 '잘 차려진 핫도그 테이크 아웃 스토어'가 있다고 해도, 길거리 양철통 같은데서 슥삭슥삭 큼지막한 핫도그를 만들어서 주던 그 맛은 여전히 못 낼것 같다.'AROUND ME > My Though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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