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30에 갑작스레 파출소 근무자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 공영 주차장에 세워 놓은 내 차를 누가 받고 도망가다 잡혔다는 것. 목격자가 있었지만, 피의자가 나중에라도 잡아 뗄 수 있으니 곧장 조사가 진행중인 경찰서로 가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뭐.. 부서진 범퍼에는 피의자 차의 노란색 페인트가 질퍽이 묻어있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옆문 후드도 하나 떨어져 있었다. 증거를 줄줄 흘리고 간 거다. 그래도 사진을 몇 장 찍고 경찰서로 갔다.
피의자는 나보다 약간 나이가 있는 아가씨. 멀찍이서 봐도 상황은 뻔했다. 횡설수설에 목소리는 기세등등. 음주운전이었다. 면허 취소하고 페차해라, 나 겁 안난다, 난 맥주 반 잔 밖에 안했다, 증인도 있다. 피해자인 나를 만나자마자 어머 괜찮아요? 어디 안다쳤어요? 내가 다 보상 해줄께, 걱정하지 마요...하면서 계속 달라 붙는다.. 일단 사고를 낸 후이니 조용히 절차만 따르는 모습만 보여도 조금 누그러질런만, 술김에 떠는 호들갑은 너무 짜증이 났다.
옆에는 다른 택시 기사들이 있었는데... 목격자들인가 했더니, 세상에. 제2와 제3의 피해자들이었다. 주차한 내 차를 받은뒤 정차 중인 택시 한 대, 그리고 커브 틀던 다른 택시도 받은 것이었다. 정차 중이었던 택시는 손님이 내리던 상황.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
그 아가씨의 인척인 듯한 아저씨 두 명이 왔지만, 음주운전인 상황에서는 뭐라고 변호하기도 힘든 상황. 그저 연신 나에게 죄송하다고만 한다. 반팔에 추리닝, 파커 하나 입고 온 것을 보니 그 분들도 경황이 없을 터인데...
차를 맡기고 경찰관 아저씨와 사고현장으로 가면서 몇 마디. 지금은 술김에 취소해라 구속해라 페차하자라고 하지만 내일이면 십중팔구 취소만 면하게 해달라고 싹싹 빌거라고. 음주운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대다수의 전형적인 특징이란다.
하긴 그럴듯. 싸늘한 공기가 감도는 경찰서 안에서 나이도 많지 않은 아가씨가 자존심 다 내팽개진 채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울고불고 난리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음주운전으로 잃는 것이 단순히 손해배상 비용이나 면허증 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찰관 아저씨의 배려로 난 사고현장만 보여준 뒤 들어왔다. 물론 경찰관들은 제2, 제3의 사고지를 조사하느라 눈이 얄팍하게 내린 쌀쌀한 도로 위를 걸어다니셨고. 하루동안 차를 못쓰겠지만... 그래도 범퍼는 공짜로 하나 갈겠구나.
음주운전 절대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