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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지기 내차 떠나기 전날
    AROUND ME/Stuffs 2011. 12. 27. 03:28
    제대하자마자 어영부영 학업과 일을 같이 시작했던때. 분당에서 목동까지 출퇴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가끔은 외근도 해야하고, 일단 방송국 일도 너무 늦게 끝났으니.

    결국 큰 맘먹고 구입한 차가 바로 카렌스 2. 아직도 좋은 차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그때는 특별히 이 차종에 무엇이 그렇게 끌렸던 것인지 기억이 가물하네요.
     
    암튼 단순한 이동 역할 빼고도 수납 공간이 넉넉해서 짐차로도 꽤 제몫을 하던 차였습니다. 다행히 초보시절은 어머니 차를 이곳저곳 긁어대면서 지나왔기 때문에, 정작 내 차가 생겼을때는 더 조심할 수 있었고요.



    아직은 새끈하던 당시


    그러다가 2년차때 정말 큰 사고가 있었죠.명백하게 신호위반하고 돌진한 그랜져가 거의 제 차를 반파시켰습니다. 그래놓고도 쌍방 잘못이니 적당히 합의하자던 그 아저씨. 지금은 잘 사시는지. 암튼 잘 몰던 차는 확실히 그담부터 골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8년여를 버텨왔죠. 다행히 눈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받거나 한 일은 있었지만, 대인이나 대차 사고를 낸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10년째를 향해가는 이 차. 계절만 바뀌면 마치 직원이 월급이라도 달라는 듯이 한 달에 몇 십 만원의 수리비가 나가는 잔고장이 끊임없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림잡아 최근 1년동안 가랑비에 옷젖듯이 나간 수리비도 2백만원 돈은 너끈히 될거에요. 그때마다 통탄하며 차 바꿔야지 하고 되뇌이지만, 막상 고쳐놓고 타면 거짓말처럼 잘 달리니까 다시 미련이 생기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 되었습니다.

    올 겨울 들어서는 브레이크 라인과 휠쪽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또 고쳤고, 이러고 타려니...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주 뒤 또 같은 문제가 생겼고, 정비소에서 무료로 고쳐주겠다고 함에도 이제는 정말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눈 딱 감고 차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런 신속한 결정에는 오토 업계에 대해 훤한 우리 처남의 도움도 한 몫 했고요.


    새 차 계약을 마치고나니, 마치 무슨 살아있는 생물인양 제 차는 다양한 방법으로 항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내등 퓨즈가 나가고, 핸들 소리는 더 심해지고, (제 정비 불찰이지만) 타이어도 급속히 상태가 안좋아지고... 그러다가, 결국 지지난주 생전 안해보던 졸음 운전으로 앞차를 살짝 받는 8년만의 대차 사고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받은 차는 랜드로버 익스플로러! 다행히 차주분께서 좋은 분이셔서 그야말로 최소한의 보상만으로 끝냈습니다. 졸음 운전이야 제 과실이지만, 웬지 느낌은 식은 제 애정과 그로 인한 차의 분노가 조성한 차내의 묘한 공기 탓처럼 여겨지는 억지 마음도 들었습니다.

    처분할때 견적을 내면 되기때문에 수리를 안한 상태로 놔두었고, 그러다보니 노쇠해진(?) 몰골 때문에 정은 정대로 떨어져서, 새 차 나올때까지 버티려고 방송국 갈때도 가급적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페북에 남긴 글 보고 재원이가 한 마디 하네요. "그래도 희정이네 웨딩카이기도 했는데..."



    희정이 결혼식때 꽃단장 했던 모습

    하기야. 이 차와 함께한 추억 많습니다. 또래보다 차를 조금 일찍 마련한 편이었고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큰 차여서 다같이 놀러 갈때는 늘 제 차가 우선이었죠. 방송국 멤버들이랑 강원도 갔던 기억도 나고. 그러고보니 교제했던, 혹은 소개받았던 여성분들도 모두 이 차를 탔었군요. 지금이야 명실공히 아내가 탑승 빈도 1위지만.



    그러고보니 재해도 많이 겪었죠. 테헤란로가 물에 잠겼을때 거의 보트 수준으로 물을 헤짚고 나간 적도 있었고, 눈길에서 댄스를 춘 적도 있었고.... 그러고보니 2년차 사고 이후 대형 사고 안난게 참 용합니다. 아무튼 내일 새 차가 오면 이 녀석은 떠납니다. 사진이나 좀 찍어 봅니다.


    지난번 랜드로버와 받은 자리. 세게 박진 않았지만 범퍼가 전반적으로 밀리면서 본네트도 안열립니다. T_T
    이사 와서 앞집 아줌마가 살짝 받는 바람에 번호판이 우그러졌는데, 차일피일 미루면서 교체를 안했네요. 방송국 주차장 출입이 번호인식으로 바뀐 다음에 서울차인데 부산차로 인식하는 일이 종종 생기기도 합니다.



    닳디 닳아서 민둥해져 버린 앞 타이어. 역시 계약하고 교체할 생각 안했습니다.



    꾀죄죄...

    폐차될 거 같진 않지만, 보내는 마당에 다른 누가 탄다면 약간 샘도 날거 같습니다. 제가 작가 일을 하든, 보드게임 쇼핑몰 사장이든, 음반사 직원이든, 아들이었던 남편이었던, 어떤 상황에서도 늘 따라 다녔던 차인데.

    고맙다. 만약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된다면 나같은 사람 아니라 좀 더 아껴주는 사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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