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 시리즈'의 잠재적 스포일러 있음)
'본 시리즈'를 본 사람들은 다 동감하겠지만, 제이슨 본은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정말 늘상 내내 굳은 표정으로 일관한다. 정말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
그러다가 [본 얼티메이텀]의 회상 장면에서 나오는 그 미소 장면 때문에 역으로 1편이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본 얼티메이텀] 개봉 즈음해서 전편들을 다시 봤는데, [본 슈프리머시]에서 [본 얼티메이텀]에 이르는 외로운 여정을 머리에 담은채 다시 본 [본 아이덴티티]. 갑자기 마음이 아픈 영화로 느껴지게 하는 장면이 종종 있었다.
함께 밤을 보낸 다음날. 부시시한 표정으로 마리가 바닥에 남을 발자욱을 걱정하자, 당황스런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씨익 웃는 제이슨... 망말로 3부작 가운데, 정황상으로는 제일 막막해야 마땅할 1편이 어떻게 보면 제이슨 본의 심리적 쉼터가 되는 것이 아닌지.
이 분위기는 존 마이클 케인의 행적을 찾기 위해 레지나 호텔로 마리를 보내는 장면에서 더욱 강조된다.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담대히 들어가는 마리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행동지침을 내리는 본의 나레이션. 마치 [얼티메이텀]에서의 워털루 역같은 장면이 펼쳐질 듯한 분위기의 찰나에...
똑똑똑... 갑자기 본이 있는 전화 부스로 돌아온 마리.
당황한 본에게 마리는 머뭇거리면서 본이 가르쳐준 방법 대신, 존 마이클 케인의 비서라고 둘러대고 무사히, 그리고 더 쉽게 단서들을 빼왔다고 얘기한다.
그 순간 한 치의 실수도 용납 안되는 트레드스톤 최고의 요원이요, 지금도 개봉관에 걸린 [본 얼티메이텀]으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기민한 스파이인 '그 제이슨 본'이...
"아.. 음. 좋아요... 어.. 재치가 있군요..."
이 한 마디 알딸딸하게 던지고 밍기적 밍기적 마리와 함께 돌아서서 걷는다. 단서를 찾아내는 긴박한 순간이 아닌.. 마치 그들만의 엉거주춤 데이트 장면같아 뵌다.
물론 그 절정은 그리스 해안에서 - 내 친구 SS의 표현으로는 - 정말 시리즈와 안어울리는 희디흰 남방을 입고 나타난 본과 마리의 재회 장면. 어느때보다도 더 밝고 화사한 웃음으로 포옹하는 두 연인.
이게 [본 아이덴티티]의 결말이다. 뉴욕의 도심의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어가는, 혹은 어둑한 강에서 헤엄쳐 달아나는 속편들의 결말과는 더욱 상극이다. 그래서 지금 다시 보는 이 장면이 더욱 안스럽고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