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애플 트레일러 사이트에서 이 소설의 영화판 예고편을 봤다. 편집이 안된채 3분 그대로의 중간 영상을 보여주는 독특현 형식의 예고편이었는데... 백설공주의 마녀처럼 나오는 메릴 스트립과 [프린세스 다이어리]때의 띨빵한 모습 그대로 돌아온 앤 헤터웨이가 꽤나 좋은 앙상블을 보여주는 영화 같았다.
그러고나니 버스 옆구리 등에 광고가 붙어있던 이 영화의 원작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사서 보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소설은 패션지 '보그'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였던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 작중에서는 주인공 앤드리아가 일하는 곳이 '런웨이'이고 그녀의 상사는 편집장인 미란다 프리스틀리이지만 실질적으로 프리스틀리는 '보그'의 편집장 윈투어를 빗댄 것이다.
내용은... 그게 뭐 우루루 풀어낼 정도로 알차지가 않다. 사회초년생인 주인공 앤드리아가 '얼떨결'에 패션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스 프리스틀리의 어시스턴트가 되고 가공할 수준의 짜잘한 시중들을 들어가며 벌어지는 좌충우돌담이다. 여기에 세계 패션계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어시스턴트이지만 실제로는 허드렛만도 못한 업무의 연속인 주인공의 상황의 대비가 주 얼개를 이루고. 여기에 히피스타일의 단짝 친구,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직속 선배, 모범스러운 유태인 부모님과 남자친구, (왜 나오는지 별로 이해가 안가는) 느끼한 작업남 등이 얽혀서 몇가지 에피소드를 더 만들어 낸다.
그럭저럭 읽다가 탄력도 받아서 끝까지 완독했지만 글쎄...
사실 이 소설의 골자는 어리버리 주인공이 괴팍하기 그지없는 직장상사가 던져주는 압박을 헤쳐나가는 새디스틱한 상황과 그 돌파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반에는 이런 점이 좀 어필을 하긴 한다. 생경한 시스템에서의 적응기도 나름대로 재밌고, 직장인이라면 어느정도의 화자일치를 해도 될 정도로 공감대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소설이 중반을 넘어가면 이게 거의 기계적인 반복 수준이 된다. 프리스틀리가 주인공에게 해대는 요구라던지, 거기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 그이후 내리사랑처럼 주인공 주변의 사람들에게 튀는 불똥도 다아아아 초점없는 반복일 뿐이다.
주인공의 발전도 너무 완급하는 문제가 있다. 앤드리아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라요'의 순진 넘버원 스타일이라고 말하기에는 사람에 대한 방어기제도 나름 갖추고 있고, 뒤따마 까는 속내도 어느정도 있는 캐릭터다. 물론 이런 캐릭터가 역시 독자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긴 하지만.... 책의 중후반부쯤 가면 '그렇게 못참겠으면서 왜 이러고 살어?'라는 아우성이 안나올래야 안나올 수가 없을 정도로 좀 짜증이 나는 수준이다. 차라리 말도 안되는 프리스틀리의 요구를 미봉책을 동원해서 해치우는 맥가이버식 모험담이 더 많았다면 재밌었을텐데 말이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꽤 괜찮다. 혹독한 몇달간이 지난 이후 어느정도 고지적응이 이뤄지려는 찰나, 저울의 다른 한쪽 끝에 '가족과 우정'이 달리는 상황은 진부하지만 좋은 묘사였다. 덕분에 막판 스퍼트로 읽어냈다.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자면, 소설이 좀 장황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눈 딱감고 몇 부분만 과감히 쳐냈다면 훨씬 리드미컬한 재미가 있었을듯.
동아인가 중앙인가에서 30대 전문직 종사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특집을 다루면서 그녀들이 애독하는 '칙릿' (Chick-Lit)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이 분야의 바이블로 이 소설을 이야기하던데... 오히려 그런 부류의 여성들이 좋아하는 책은 실용성에 바탕을 둔 잡지라던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자기 계발 서적들일듯. (그리고 그게 진짜 '치클릿'이구) 그야말로 세 사람 정도 예시로 붙잡은채 이것저것 물어본 것으로 모범사례 도표까지 만든건 좀....
아무튼 예전에 비슷한 류의 소설인 [쇼퍼홀릭]을 슬쩍 읽어본 적이 있는데... 주마간산으로 읽었음에도 이 책이 훨씬 더 재밌었다는 생각이다. [쇼퍼홀릭]이 나름대로 저자가 의도하는 타겟을 잘 관통하고 있다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다소 판타지에 속하는 내용이고... 그리고 너무 히스테릭(!)하다.
[수퍼맨 리턴즈]와 같은 주에 틈새 개봉을 했는데, 개봉 성적도 좋고 평론가 반응도 좋다. 밑에 링크에도나와 있지만 '소설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개봉하면 봐야겠다. 메릴 스트립의 노익장도 확인하고 싶고,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다시 눈여겨 보게된 앤 헤터웨이의 코믹연기 컴백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