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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의 일상, 대중문화, 그리고 보드게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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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립스트림(Slipstream), 환상소설에 대한 관심
    CULTURE/Books 2007. 2. 2. 05:38

    - Empire of the Sun과 J.G 발라드

    내가 영국의 슬립스트림(Slipstream)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때에, 본의 아니게 이 분야의 대표적인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J.G 발라드의 [태양의 제국]이었다. 제목만 봐도 연상되지 않는가? 당연히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의 원작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였다. [E.T]의 감독 아저씨가 만든 영화의 원작이니 당근 '청소년 모험 소설일꺼야!'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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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쪼매한 주인공 꼬마의 오만가지 머릿속에서 보고 반응하는 단상들, 그리고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전운이 감도는 상해의 분위기를 묘사한 문체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중딩이었던 나는 책을 덮어벼렸고, 그냥 15살짜리 신인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주인공 꼬마로 나오고 스필버그 아저씨가 감독을 한 영화 [태양의 제국]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대학교때 머리가 조금 크고 난 뒤 그 때 덮었던 [태양의 제국]을 다시금 꺼내 읽어봤는데 처음 읽었을때와는 달리 굉장히 재미가 있었다. 그러고 난 뒤 알게 된 사실은 이 원작을 쓴 J.G 발라드가 소위 '경계소설'이라고 불리는 슬립스트림 (사실 슬립스트림은 보편적으로 SF 휘하의 장르 중 하나로 구분하는 장르로 SF와 판타지의 경계에 있다고 한다.), 조금 더 일반적인 카테고리로 말하자면 '뉴웨이브 SF소설' 분야의 대표적인 작가이고, 황당한 SF적 설정과 환상적인 요소가 소설의 위주가 되는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2차 대전의 상해의 모습을 그렸던 [태양의 제국]은 상당히 이례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태양의 제국]에서 내가 발라드의 특성을 깊게 느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뭔가 다른 뉘앙스는 있었다. [태양의 제국]은 내가 기대했던 '모험 소설'이 아니라 태생적인 '성장 소설'이었다. 일본군 공습으로 난리통이 되어 부모님과 헤어진 주인공 짐은 수용소의 생활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짐은  일본군들의 눈을 피해 대활극을 펼치는 영리한 꼬마가 아니다. 그는 어둠의 생리를 배우며 어줍짢게 어른들의 흉내를 내고 인위적인 퇴페함을 체득한다. 짐이 후반부에서 부모님과 재회할때, 그 순간은 감격스러운 호들갑이 아닌 무언가 그 아이가 다른 삶의 전개를 맞닥뜨리는... 오히려 더 어두워보이기 까지 하는 순간이다. 스필버그의 영화가 이 부분을 잘 표현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참고로 스필버그의 영화 버젼은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무튼 J.G 발라드에 대한 인상은 이렇게 남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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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다시 본  J.G 발라드의 작품은 역시 책이 아닌,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크래쉬]였다. (지난해에 오스카 작품상 받은 그 [크래쉬]말고) 교통사고의 순간에 성적 흥분을 느끼는 이들이 끔찍한 수준의 가학성을 반복하며 점점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한국서 개봉당시 가위질 문제때문에 꽤나 회자된 작품이었다.

    이 영화 역시 SF적 요소와는 관계가 없다. 발라드는 섹스로 표현되는 원초적 욕구와 자동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며 생겨나는 파괴적 에너지를 접목시키며 그야말로 변태의 궁극으로 가는 군상들을 묘사했는데...뭐 여기서 더 껴들 수 있을 감상의 여지가 못느껴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머릿속에 이미지만 남은 정도라고나 할까. 사실 영화를 본 순간에는 J.G 발라드의 필체보다는, 여전히 그 궤를 유지하고 있는 크로넨버그의 영상만 더 어필했다. (하기야 책이래봤자 한 권 밖에 안 읽어본 내가 어찌 필체를 감지할  수가...)



    -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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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10여년이 지나....

    지난해인가... 친구 P에게서 알레고리 소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P가 추천해준 소설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 관심이 생긴 나는 친구 SS에게 뻔뻔하게 생일 선물로 이 책을 부탁해서 선물 받았고,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노골적이라면 노골적일 정도로 그 설정과 비유들이 날 좀 봐달라고 손을 흔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사라마구는 굉장히 독창적인 스타일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물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J.G 발라드의 관심선상에서 연장되는 책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중남미 작가라는, 그리고 노벨상 수상작가라는 거대한 주류 분위기와의 연결점 때문이었을까. 물론 영국과 중남미라는 차이가 제일 컸을듯 하다. 사실 세세한 분위기도 다르다. 발라드나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영국 소설들에서 초자연적인 체험은 비교적 개인적인 것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상황을 상정하고 거기서 비롯되는 일들의 나열로 이어지는 설정은 뭐랄까... 어릴때 티비에서 해준 [환상특급 (Twilight Zone)]의 한 에피소드의 거대한 확장판 같았다. 그 어휘와 소재가 더 자극적이고 난폭할 뿐이지 [크래쉬]도 사실 이런 분위기를 약간 풍기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가 책의 재미와 덩달아 장르에 대한 관심이 조금 커진 덕분인지 나한테는 J.G 발라드의 뉘앙스가 다시 떠올랐고 한때 읽으려다 말았던 [크리스탈 월드]같은 발라드의 소설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추천한 P가 워낙 이 분야에 관심이 있어하는 친구인지라 그냥 몇가지 이야기는 나누긴 했지만, 정말 관련 작품들을 챙겨볼 정도는 아니었다. 뭐  다른 일로 (esp 보드게임) 바쁘기도 했고 말이지. ㅋㅋ (헉. 갑자기 글 쓰다가 보드게임이 하고 싶어진다.. -_-;; )


    -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그러다가... 지난 가을에 기다리던 영화 [프레스티지]가 개봉했다. 원작이 있는 영화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한테 먼저 어필한 것은 원작보다는 휴 잭맨과 크리스천 베일(오. 이 포스트에서 두번이나 등장하는군!)이 주연이고 [배트맨 비긴즈](!)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시사회까지 챙겨서 봤는데...

    (영화 이야기는 나중에 원작을 마스터한 뒤에 DVD까지 보고 자세하게 포스팅 할 듯)

    사실 영화 [프레스티지]는 블록버스터 필의 영화가 아니었다. 선악이 확실한 대척점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마술사들의 전투를 그린것 치고는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시큰둥했다. 보고 난 뒤에도 약간 찝찝함이 남기까지도 할 정도고... 그래서 주변에서도 영화를 보고난 반응의 호오의 폭이 굉장히 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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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정말로 재밌게 (그래서 두번이나) 본 나로서는 원작에 대한 관심까지 생겼고, 그 때문에 원작자인 크리스토퍼 프리스트를 검색어로 열심히 구글링을 해봤다.  그러다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짧은 논문을 하나 읽게 되었고, 프리스트가 위에서 언급한 J.G 발라드와 함께 슬립스트림의 기수로 인정받는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리스트의 초기작은 SF적인 설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비교적 과작을 발표하는 그의 최근작은 오히려 SF적인 가제트나 설정에 대한 의존도가 크지 않은 편이다. 영화만 봐도 알겠지만 [프레스티지]는 19세기 영국이 배경이고, 84년작인 [The Glamour]는 기본 설정상으로는 연애소설이기 때문이다.

    검색해서 찾은 논문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래서 프리스트의 소설 중 번역된 게 있나 찾아봤더니 유일하게 있는 것이 84년의 [The Glamour]였다. 번역제는 [매혹]. 관심이 생긴 나는, 이번에는 P에게 -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엉뚱한 핑계를 들어서 - 책을 사달라고 졸랐고 P는 흔쾌히 책을 사줬다.

    [매혹] 역시 만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선병질적인 캐릭터들의 대립, 그 대립조차 실체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채로 긴장감을 계속 끌었고,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참으로 무시무시한 3각관계'에 대한 연애담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말이 마구 뒤틀리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순식간에 다 읽었다. ([매혹]에 대한 포스팅은 요것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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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 (The Glamour)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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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restige (1995)


    어제부터 [프레스티지]를 읽기 시작했다. (영화 개봉직후 번역판이 나왔다.) 영화버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설정부터가 다른 출발을 하고 있기에 흥미롭기 그지없다. 개봉한지 반년이 되어가니 곧 DVD도 나올 터이고 (물론 나오면 필 구입이다. 원작에 대한 관심이 아니더라도 [배트맨 비긴즈] 감독의 작품아닌가!) 다른 세계에 대한 시선이 영화든 소설이든 융단폭격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는고나.. ㅋ



    P.S : 친구가 책 사달라  하면 군말없이 사주는 좋은 친구들. P와 SS에게 (정말 P.S구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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