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미셀 공드리
주연 :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샬롯 갱스부르, 미우 미우
뮤직 비디오나 CF 출신의 감독들의 평가는 굉장히 아슬아슬한 선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데이빗 핀쳐(세븐)처럼 평론의 극찬을 받는 사람이 있고, 마이클 베이(진주만, 아마겟돈)처럼 욕은 욕대로 먹으면서 흥행은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는 사람이 있고, 안톤 후쿠아(킹아더, 트레이닝 데이)처럼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있고, 사이먼 웨스트(툼 레이더)처럼 이도저도 아닌 3류도 있다.
미셀 공드리는 저 위의 다양한 보기들을 다 피해가는 사람같다. 막연하게 작가주의라고 하기에는 이미지의 표출이 쎈 편인데다가 지나친(?) 코메디를 만든 적도 있고... 그렇다고 이 사람을 블록버스터 감독이라 할 수도 없겠고.
그 모든 총합을 이뤄낸 영화가 입소문 좋기로 자자했던 [이터널 선샤인]이다. 흥행 성취도가 높은 영화라고 할 순 없지만 그건 지각 개봉을 한 수입사 때문이고....
아마 [수면의 과학]에 끌리는 사람의 대부분은 역시 [이터널 선샤인] 때문이 아닐까?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을 맡았던 찰리 카우프만이 빠졌기 때문에 뭔가 달라졌을거라고 감안한다면 그래도 괜찮게 봤을법하다.
뭐랄까... [이터널 선샤인]의 얼개에서 좀 더 뼈가 빠진 연체동물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다. 일단 익숙하지 않은 불어와 영어의 혼용부터가 그런 몽환스런 느낌에 한 몫을 더하고, 그나마 기억의 세계와 실제의 경계가 분명했던 [이터널 선샤인]에 비해 [수면의 과학]에서 꿈과 현실은 그 경계가 더 모호하다. 재밌게도 이 차이는 마치 헐리웃 영화(이터널..)와 프랑스 영화의 차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이미지가 너무 전면으로 나오는 바람에 캐릭터들간의 교감이 흐릿해 졌다고나 할까. (물론 스토리상 그 경계가 지나치게 뚜렷하면 안되었던 부분도 있긴하다.)
그래도 공드리다운 영화다. 기억의 세계를 헤짚어 봤던 남자가 가볼만한 세계로 '꿈'만큼 적당한 곳이 또 어딨겠는가. 헐리웃 영화답게 다양한 기법으로 기억의 세계를 만들었던 공드리는 이번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통해 꿈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소심남 스테판의 좌충우돌은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의 진지함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고... (아이러니하게도 스테판 역할을 짐캐리가 맡았으면 더 어울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캐리는 정말 좋은 배우다.)
우리의 '귀여운 반항아' 샬롯 갱스부르는 도대체 얼마만에 보는 것인지. 난 사실 배우로서 보다는 아빠인 세지오 갱스부르와 함께 불렀던 무슨 노래의 한소절밖에 생각이 안나는데.. 나름대로 매력있구먼.
공드리의 차기작으로 만족스러웠지만, 카우프만이랑 다시 한 번쯤 손을 잡는 것도 좋을듯.
- 2006년 12월 31일 시네큐브. 2년에 걸쳐 작은 영화 두 편보기 프로젝트 첫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