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전지현이 실사 버젼의 주연을 맡았다고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블러드 :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감독이었던 키타쿠보 히로유키가 1991년에 만든 애니메이션.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작품은 원작과 각본을 맡은 오토모 카츠히로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전작인 [아키라]처럼 심각한 작품이 아닌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근미래. 일본의 노령화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후생성은 z-001 이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침대를 개발한다. z-001은 거동이 힘든 노인들의 식사, 배변, 목욕, 여가까지 알아서 책임질 수 있는 최첨단 기계. 이 기계의 테스트 대상으로 간호대학생인 하루꼬가 자원봉사로 돌보고 있는 타카자와 할아버지가 선택된다.
영화 내내 누워있는 타카자와 할아버지.
덤벙거리지만 착한 하루꼬.
시연회를 통해 놀라운 기능을 선보이는 z-001. 하지만 타카자와는 기계에 구속된 상태를 힘겨워 하고 이를 인지한 인공지능 z-001은 하루꼬를 호출한다. 하루꼬는 학교 친구들과 함께 타카자를 탈출시키지만 곧 잡히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요양원의 할아버지 해커를 통해서 z-001과 접속하는 하루꼬. 순간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 z-001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자기 증식기능을 통해 주변의 기계들을 흡수하면서 점점 거대 괴물이 된다.
이랬던 z-001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후생성은 z-001을 쫓지만 점점 더 강력해져가는 z-001을 막기엔 역부족. 한편 후생성 부장인 테라다는 엔지니어인 하세가와에게서 z-001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듣는다.
[노인 z]란 제목은 당연히 [마징가 z]의 패러디. 영화는 일본에서 심각해져가는 고령화 문제를 기저로, 애니메이션 특유의 메카닉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플롯의 실타래로 풀어간다. 초반부 타카자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동네의 깝깝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령화 문제가 전혀 무관하지 않은 한국의 실정에 비추어 그 체감도가 만만치 않다.
[노인 z]가 맥을 잘 잡고 있는 것은 차짓 밍숭맹숭해질 수 있는 노인 문제에 대한 감정적인 접근을 유머와 잘 융합시켰다는 점. 여기서 주인공인 하루꼬의 의협심 넘치는 액티브한 캐릭터는 그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설정상의 완급은 있다. 하루꼬를 돕는 해커 할아버지들은 저런 세기의 천재들이 어짜다가 한 요양원에 모이게 되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할 정도이고, 그들이 타카자와 할아버지를 각성시키기 위해서 죽은 부인의 목소리를 재창조한다는 것 역시 조금은 억지스런 설정이다.
물론 이와는 별도로 타카자와의 부인이 z-001에게 '빙의' (혹은 빙의에 준하는 프로그래밍)가 된다는 설정은 후반부의 클라이막스 고조를 위해서 중요한 설정이 되기도 한다. z-001의 폭주가 타카자와 자신이 아닌, 타카자와를 지키기 위해 되살아난 할머니의 방어기제 때문이라는 연결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고로 차라리 할머니의 육성을 담은 테이프 같은 것을 매개체로 썼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생긴다.
'A.I 로보트와 일체가 된 할아버지가 폭주를 한다'는 설정은 z-001, 아니 할머니가 후생성 부장인 테라다와 모종의 계약을 맺으면서 끝이 결정되는 유한한 여정으로 정리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게 잘 풀릴 분위기에 이르러서, 이런 류의 스토리들이 그렇듯이 진짜 악역은 인간들의 욕심으로 본의아닌 폭주를 하게된 인공지능이 아닌, 이를 악용하려는 과학자가 된다. [스텔스]에서 인공지능 스텔스기가 진짜 악당이 아니었던 것처럼.
후생성 부장과 할머니의 대화.
클라이막스를 위해 영화는 악당인 하세가와가 준비한 또 다른 군사로봇을 동원해서 마지막 결전의 순간을 마련한다. 협소한 공간, 두 대의 로봇 사이에 낀 인간들의 위험까지 버무려지면서 위기 상황은 고조되는 클라이막스이긴 하지만, 자기증식 기능이 지나치게 과잉으로 보여지면서 비쥬얼 상으로는 메카닉 물이 아닌 무슨 공작왕류의 판타지 파이트나 괴수 영화처럼 보여지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
형체가 분명한 두 로봇의 육박전으로 마무리하는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선한편인 z-001의 주체가 노쇠한 육체와 작고한 할머니의 마인드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선택도 그다지 어울릴것 같진 않긴 하다.
진짜 악당과 진짜 악당의 로봇.
악당이 보다보니 그렇게 악당도 아니고, 로봇도 보다보니 막무가내 로봇도 아니고 이 과정에서 캐릭터들간의 유대감이 꽤 잘 쌓여가는 탓에 마지막 장면은 사뭇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특히 러닝타임 내내 별 하는 일이 없던 타카자와 할아버지가 온전하지도 않은 정신으로 z-001에게 "임자.."하고 나직히 말하는 장면은 찡하기까지 하다.
이별.
[노인 z]는 볼만한 화면만큼이나 그 안의 블랙유머 또한 만만치 않은 영화다. 그러나 설정에서 연상되는 인간과 기계의 일체화 같은 '공각기동대'스러운 요소는 실상 거의 없다시피하다. 결국 [노인 z]가 떠 넘기는 것은 철저히 실버 컴플렉스에 대한 세대의 각성이다. 개봉한지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 고령화 문제가 비단 일본의 것만으로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재밌게 보고 난 뒤 씁쓸해지는' 심상의 전달폭이 한국에도 만만찮은 잔영을 남길만한 영화이기도 하고 말이다.
영화 마지막에는 반전이 하나 있다. 브래드 버드의 애니메이션인 [아이언 자이언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면 예상할 만한 반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