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제목은 당연히 [악마의 씨]가 되어야 하겠지만, 10년전인 1968년에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Rosemary's Baby]가 '악마의 씨'란 제목으로 소개된 적이 있어서인지 국내 제목은 [프로테우스 4]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국내 개봉 여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를 기억하는 이들 대부분은 토요명화에서의 방영본을 기억하고 있는듯 하다. 원작은 딘 쿤츠의 동명 소설.
알렉스 해리스 박사는 자동화 기기와 인공지능의 신봉자. 그는 집에도 모든 시스템을 총괄하는 컴퓨터 알프레드를 두고 가사와 보안을 맡긴다. 하지만 워낙 워커홀릭이라 아내인 수잔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테라피스트인 수잔은 몇년전 사고로 딸을 잃은 뒤 남편과 더욱 소원한 상태다.
알렉스는 스스로 사고하는 수퍼컴퓨터 프로테우스 4를 개발해내고 연구 자금을 확보하려 한다. 프로테우스 4의 목적은 해저 기반내에 있는 광물 채취. 연구 성과는 점점 빛을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수잔과 크게 다툰 알렉스는 결국 짐을 싸들고 연구소로 가서 프로테우스 관련 일에 몰두한다.
알렉스 해리스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프로테우스는 어느날 알렉스를 불러서 생태계 균형을 깰 수 있는 자원 채취 작업에 동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피조물의 반항에 당황하는 알렉스. 한편 프로테우스는 네트워크를 통해 알렉스의 집에 있는 알프레드를 조종하고 집에 혼자 있던 수잔을 감금한다.
탈진 상태가 된 수잔에게 프로테우스는 자신의 아기를 낳아달라는 제안을 한다. 자신이 만든 정자를 인공수정 하겠다는 것. 수잔은 말도 안되는 제안을 거절하지만, 프로테우스는 수잔의 목숨은 물론 집에 접근하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볼모로 삼으며 종용한다. 결국 프로테우스의 제안을 수락한 수잔. 아기는 보통보다 훨씬 빠르게 한 달만에 태어나고 프로테우스가 만든 인큐베이터로 옮겨진다.
프로테우스의 영향력이 두려워진 알렉스는 시스템을 꺼버릴 것을 명령하고 집으로 간다. 수잔의 이야기에 경악하는 알렉스. 두려운 마음으로 인큐베이터 안을 들여다 보는데....
온갖 갖은 고초를 다 당하는 수잔. 여기서 동원되는 것은 물리적 폭력보다는 관음증과 같은 성적 설정에 더 치우쳐져 있다.
여러모로 [로즈마리의 아기]와 닮아 있는 구석이 있다. [닥터 지바고]의 라라 - 줄리 크리스티는 미아 패로우가 그랬던 것처럼 모진 고생을 한다. 다만 [로즈마리의 아기]를 둘러싼 캐릭터들이 지나치게 서글서글한 사탄 신봉 주의자들이었다면, 수잔 해리스의 주변에는 사람 한 명 없고 오직 프로테우스의 목소리, 그리고 프로테우스의 조종을 받는 휠체어 로봇인 조슈아뿐이다.
따라서 영화는 전적으로 줄리 크리스티의 히스테릭한 연기에 의존한다. 하지만 [로즈마리의 아기]처럼 친근한 얼굴에서 서서히 변해가는 이웃들에게 동요하는 것이 아닌, 시작부터 공격조로 나오는 인공지능에 대한 반응이기에 그 연기는 다소 피상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영화의 안티테제는 당연히 프로테우스이고 프로테우스의 목소리를 연기한 로버트 본 (이 사람 옛날에 나폴레옹 솔로로 나왔던 그 사람이다!)도 좋지만 아무래도 목소리 뿐이라 실재감이 없다. 그런고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문제의 로봇 조슈아인데... 사실 이 조슈아는 영화 초반에 가정 서빙용이라며 소개가 되는데 휠체어에 마네킹 팔이 하나 떡 달린 그 모습은 보이자마자 섬뜻하다. 굳이 저런 괴물 형국의 로보트에게 시중을 맡겨야 한다니.. 차라리 직접 하고 말지. 하긴 조슈아는 수잔 해리스를 물리적으로 '옮겨야'하는 역할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이긴 하다.
기분 나쁜 조슈아.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프로테우스와 수잔 해리스의 역학 관계. 자세한 물리적 완력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프로테우스는 자신의 권위로 수잔을 누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설득을 하려한다. 물론 그 결정타가 수잔의 환자를 볼모로 잡는 순간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프로테우스는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이야기 한다. 문제는 설득력이 별로 없다는... 그래서 설득보다는 우기는 쪽에 가깝다는 것인데, 당연히 수잔은 여기에 넘어간다.
결국 수잔은 강제로 겁탈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로 인공수정 수술대에 오른다. (심지어 이 장면에서 프로테우스는 '뇌파 조종으로 수술대에 오르겠느냐, 당신 의지로 오르겠느냐'는 것을 묻기까지 한다.)
마치 [전격 제트 작전]의 킷트처럼 말 한마디 할때도 현란하게...
그 이후에도 프로테우스는 자만하지 않는다. 자신이 행하는 짓이 얼마나 인류에게 큰 의미가 있는지를 고루하게 설교를 늘어놓는 것이다. 정작 듣는 수잔은 꽤나 지루해 하는듯 하지만.
작은 액션이 있긴 하다. 알렉스의 조수가 집의 시스템을 점검해주겠다는 핑계로 와서 프로테우스의 계략을 알고 펼치는 활극. 조슈아가 쏴대는 레이져 광선을 거울로 받아치기까지 하면서 나름 선전하지만, 일차 공격을 블로킹한 다음에 빨리 집밖으로 나가야 할 것을, 그 놈의 호기심때문에 지하실에 갔다가 프로테우스가 만든 -마치 우리 어릴때 갖고 놀던 뱀 퍼즐같은- 로보트에 의해서 최후를 당한다.
제 때 나가면 되었을 것을...
특히 황당한 것은 인공수정 장면. '인공수정'이란 것 자체가 남녀간의 성교처럼 에로틱할 부분이 전혀 없음에도 프로테우스는 "내가 인간 남성처럼 당신을 만질 수 없지만 당신에게 신비로운 것들을 보여줄 수는 있소"라고 하면서 온갖 현란한 만화경같은 화면들을 수잔에게 보여준다. 이른바 가상현실 섹스인것. 특히나 이 장면에서 보여지는 기기묘묘 화면들은 거의 3분가량 지속되는데 지겹다 못해 조금 멍해지는 수준이다. 감독이 과연 이를 의도한 것인지....
수태 장면.
좀 더 재밌어지는 것은 수태 후의 장면. 일반적인 아기들보다 훨씬 빠른 28일의 수태기간 동안 수잔은 결국 이것이 자신의 아기라는 것을 받아들인양 나름대로 프로테우스의 시중을 거나하게 받기도 하고,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신기해 하기도 한다. 출산후에 아기 아버지의 정체를 알게 되는 [로즈마리의 아기]와는 대조적인 부분.
결국 알렉스 해리스 박사가 집으로 왔을 때는 수잔은 영화 초반의 엉망이 아닌, 오히려 잘 정돈된 모습인데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오히려 더 공포스럽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은 이런 분위기의 영화에서 이어지는 수순을 따라간다. 인큐베이터속의 아기는 철갑으로 둘러쌓인 끔찍한 - 물론 '끔찍하다'는 것은 그 당시 기준 내지는 작자의 의도이고... 실제로는 무슨 소림사 18동인의 베이비 버젼처럼 무진장 코믹하고 귀엽다- 모습으로 나타난다. 전형적인 '광기어린 과학자'인 알렉스는 이런 아기라도 살려야 한다고 하고 갑자기 정신이 들은 수잔은 아기를 죽이려 하지만, 철갑 껍질이 벗겨진 뒤 나오는 귀여운 모습(죽은 딸과 같은 모습이다)은 결국 두 남녀 모두 '어쩌겠어. 낳았으니 키워야지' 모드로 바꿔 놓는다. 그리고 아기의 뜻모를 표정을 클로즈업 하면서 엔딩.
아기 등장. 무슨 거대한 징이라도 쳐야할 분위기. (쿠아앙~~)
확실히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미쳐버린 컴퓨터가 텅텅 닫아버리는 자동 창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닫아버리는 창문이 같은 뉘앙스겠는가? 그렇다고 인공지능에 대한 세대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의도라고 보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황당하고.
하지만 원작에 의존한 독특한 컨셉은 조용하면서도 신경을 긁는듯한 공포스러움을 보여주긴 한다. [로즈마리의 아기]에서 이런 느낌이 들었다면 - 그보다는 한 수 아래이긴 하지만 - 이 영화에서도 나름 그런 느낌을 가질만 하다.
감독을 맡은 도날드 캐멀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죽을때까지 이 영화가 거의 대표작으로 알려질 정도로 과작이었던 캐멀은 U2의 뮤직 비디오인 "Pride"를 감독하기도 했는데, 1995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Wild Side]가 마구 재편집되어 버리자 열받아서 총으로 자살을 했다. [Wild Side]는 그의 25년 감독생활 가운데 겨우 4번째 영화였다.
네이버의 영화 섹션에서 나온 그의 최후 이야기는 더 끔찍하다. 망말로 [Demon Seed] 내용보다 더 무섭다.
본인이 감독한 영화 <와일드 사이드>가 영화사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자 열받아서 권총 자살.
그는 자살 당시, 입에 총구를 들이대지 않고 머리에 쐈다고 한다. 그 결과로 45분간 의식이 있었으며 거의 쾌감에 사로잡힌 상태였다고. 공동 작가인 아내에게 거울을 들게 해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Borges가 보이느냐' 라고 물었다고 한다. 루머로는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찍게 했다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