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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서받지 못한 자 (The Unforgiven/2005)
    CULTURE/Movies 2005. 12. 4. 23:59


    감독 : 윤종빈
    주연 : 하정우, 서장원, 윤종빈


    영화의 잠재적인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

    영화보다 영화에 얽인 부수적인 이야기로 더 화제가 된 작품. 중대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이 영화를 기획한 윤종빈 감독이 군내에서의 촬영을 위해 각본을 제시했으나 거절 당했고, 때문에 따로 쓰여진 각본으로 다시 허락을 맡고 만든 작품이다. 문제는, 실제 촬영을 원래의 각본으로 마쳤다는 점인데 이 결과물을 보고 놀란 육군에서 윤감독을 고소한다고 하였던 일이 있었다.

    일단 윤종빈 감독은 잘못했다. 그 자신도 군을 나왔다면 이런 내용들이 문제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지 않았겠는가. 세월이 지나 이 영화가 재 평가를 받는다면, 한 키노 키드의 젊은 날에 있었던 에피소드처럼 여겨질 수 있겠지만, 영화가 개봉한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는 젊은이의 패기가 계약 위반에 대한 면죄부까지 허락하는 것도 아닐터인데.

    어여튼 뭐... 윤감독도 나름대로 이 상황에 대해 잘 처신을 하고 있는듯 하고, 극장 개봉도 무리 없이 이뤄졌으니. 또 나로서는 군생활을 영화화 했다는 그 소재자체부터 새롭게 여겨졌고, 내가 좋아하는 극장인 광화문 시네큐브를 오랜만에 방문할 좋은 건덕지까지 생겼으니 영화 보기 전까지는 기대가 되었다.


    괜찮은 영화였다. 철저히 저 자본으로 만든 작은 영화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했다. 병영생활의 묘사는 리얼했고, 개성강한 캐릭터들의 갈등과 반목에서 이어지는 문제의식도 뚜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때문에 윤종빈 감독을 극장서 나눠준 브로셔에 쓰인 묘사처럼 '한국이 기다린 씨네아스트'라던가, 우리 동료 작가의 표현처럼 '천재'라고 말하는 데는 도저히 동감하기 힘들었다.


    군대란 시스템은 일상과 괴리된, 왜곡된 가치가 전면으로 나서는 곳이다. 필연적으로 사회의 일상과는 다를 수 밖에 없고 과장될 수 밖에 없다. (왜 군인들이 휴가때마다 -민간인들은 죽어도 안 알아주는- 전투복 줄잡기에 그렇게 열을 올리는가..와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에 군대에는 일상적인 다른 것들 보다 더욱 더 뚜렷한 묘사를 위해 사용될 만한 키워드들이 많이 존재한다.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했었던 '오인용' 시리즈가 이런 키워드들을 인용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고, [용서받지 못한자]의 묘사 또한 이런 키워드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이 키워드들을 사용한 묘사가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에게 회상을, 그렇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 리얼한 재미를 안겨줄 수 있다는데는 동감한다. 나도 재밌었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어떤 독창성에서 발현된 거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독창성이 결여되었다면 그것을 '천재성'과 연결짓기도 좀 뭣하지 않은가.



    같은 문제는 자잘한 표현뿐만이 아닌 영화의 주제의식에서도 존재한다. 계급체계에 대한 적응과 반발, 구타와 자살의 모습들은 그리 모범적이지도 않았던 내 군생활 26개월 동안 정말 수많은 정신교육용 비디오에서 일찌감치 봐왔던 것들이다.

    망말로 [용서받지 못한자]들을 보고 있을 때는 내가 부대 있을 당시 한창 인기가 많던 이현세의 군배포용 교육 만화중 한 에피소드의 기억때문에 계속 데자뷔 현상이 일어났다. 선임병이 된 학교 동기,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참, 구두끈으로 목을 매는 자살.... 이 정도면 사실 데자뷔라고 하기만도 좀 그런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현세의 만화가 민간인들이 접할 수 없는 병영내 배포 출판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독창성 정도가 아닌 약간의 의혹마저 들 정도였다.


    총제적인 부분을 생각하자면 윤종빈 감독에게서 보여지는 것은 비범한 재능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바라는 바를 위해 우직하게 돌진하는 한 젊은이의 뚝심이었다. 분명 쉽지 않았을 촬영 일정을 위해 줄달리기를 했음이 드러나는 화면, 진득한 롱테이크와 이를 또렷이 바라보는 디렉터의 여유... 그런 것이 보였다는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영화였지만... 그래도 한국 영화계가 이 젊은이에게 많은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능보다 뚝심이 앞서긴 하지만, 세상에는 그 두 개 조차 다 갖추지 않고서도 감독이라는 직함을 달고 다니는 치들이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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