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영화는 재밌다. 일단 서스펜스라는 요소를 전제조건으로 담고 가기 때문에 오락영화로서 기본기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설정을 토대로 계속적인 변주도 가능하기에 시리즈 물도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은 역시 007.
물론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첩보물은 진짜 현실세계의 첩보전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스파이 판타지다. 잘생긴 주인공, 미끈한 미녀들, 유혹과 음모, 한 바구니 가득한 가제트들.
1996년 여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스타인 톰 크루즈가 직접 제작과 주연을 맡은 미션 임파서블(Mission:Impossible)이 개봉했다. 개봉당시에도 화제를 모았던 요소는 이 영화가 70년대 유명했던 티비 시리즈의 리메이크였다는 점. 이 시리즈는 국내에서도 '제 5 전선'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었다.
'제 5 전선'이라는 제목이 낯설다 해도 랄로 쉬프린의 박력있는 테마 음악. 그리고, '5분 뒤 자동 소멸되는 지령 메시지'같은 시리즈의 상징은 아마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런 시대의 트레이드 마크가 영화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었다.
현재 2편까지 나온 이 영화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분분하다. 1편이 좋다. 2편이 더 낫다. 둘 다 허접이다. 혹은 둘 다 재미있다. 나는? 1, 2편 모두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는 시리즈물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올때마다 007 시리즈보다는 훨씬 재밌게 보는 시리즈다.
96년에 나온 1편의 메가폰을 잡았던 사람은 브라이언 드팔마. 이 양반은 액션보다는 스릴러에 일가견을 갖고 있는 중견 고수. 따라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미션 임파서블]은 뭔가 다른 영화가 나올만 했다.
개봉후 미국에서는 엄청난 힛트를 거뒀지만, 평론가들의 의견은 호오의 입장이 분분했다.
일단 이 영화는 노골적인 스파이 판타지를 벗어나서 어느정도 정통 에스피오나지 영화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바로 전해인 95년 겨울에 나왔었던 007 [골든아이]에서 강조된 007=람보의 분위기가 각인되어 이런 느낌이 더 두드러진 것일 수도 있겠다.
독특함은 플롯의 설정에도 있었다. CIA 산하의 특수 스파이팀인 IMF의 멤버들이 팀플레이를 한다는 설정을 유지는 듯 하다가, 갑자기 초반에 멤버들이 몰살 당하는 내용을 도입한 것이다. 혼자 살아남은 멤버 이던 헌트는 누명을 쓰고 도망다닌다. 그리고 내부의 적을 찾기 위해 부던히 노력한다. 이것은 연속된 내용으로 이어지는 티비 시리즈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물론 이는 주인공 이던 헌트 역을 맡은 톰 크루즈의 스타파워에 의한 결과일 수도 있다.
연극스런 분위기. 1편의 주된 모습이었다.
1편은 기본적으로 스릴러였다. 일단 찾아 내야할 배반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배반자를 찾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영화 중간에 갑자기 배반자가 밝혀지는 엉뚱함에 불만을 표하는 관객들도 있었지만, 이 전제는 영화를 비교적 정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영화가 시작되는 프라하의 고색창연한 모습, 비내리는 런던의 장면들은 이런 정적인 느낌에 강세를 주었다. 헌트는 나중에 조인한 클레어, 루더와 함께 배반자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중에서 총격장면은 마지막에 단 한 발 쏘는 것만 나온다.
기둥이 되는 액션은 그 유명한 랭글리 침투장면과 후반부의 떼제베 장면 두 개뿐이다. 스릴러 플롯에 치중을 해서인지 이 액션장면들은 논리적인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이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래도 이어져오는 서스펜스의 연장선에 놓기에 큰 무리가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재밌었으니까.
그 유명한 랭글리 침투 장면
톰 크루즈는 이던 헌트에 적격인 배우이지만, 가끔 이 시리즈가 그의 에고에 너무 눌리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1편 초반에서 몰살 당하는 대원 중 한명으로 나오는 크리스틴 스콧-토마스나 역시 가볍게 사용된 배우 엠마누엘 베아르나 장 르노의 캐스팅에서 크게 느껴진다. 영국, 프랑스의 고급 배우들이 헐리우드 스타를 위한 변주가 된 셈이니까.
하지만 그 스타파워의 아우라는 4년뒤 만들어진 2편에서 훨씬 배가되었다. 오우삼이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1편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장발로 돌아온 이던 헌트는 1편의 짧은 머리와 사뭇 대조적이었다.
다른 것은 톰 크루즈의 머리길이 뿐만이 아니었다. 2편은 시작부터 대적해야 할 빅 보스를 미리 늘어놓는다. 이미 영화 시작전 부터 이던 헌트와 불구대천의 관계였던 것으로 설정되는 악당 숀 앰브로스는, 이던 헌트의 전략까지도 꿰고 있고, 심지어는 헌트로 변장까지 해서 교란작전을 펼치는 위험인물이다.
남자 2명의 대결구도는 이미 오우삼의 여러 영화에서 보아온 구도. 아쉽게도 그들의 대립구조가 충분한 부연의 시간을 갖지는 못한다. 나야 노도프 홀이라는 이름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여 마치 체스의 말처럼 두 남자 사이에 끼어서 이 갈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해줄 뿐이다.
여하튼 이 모든 미션의 해결은 톰 크루즈의 화려한 액션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그 액션의 무게는 1편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량감을 갖고 있다. 1편에서 십미터도 안되는 높이의 천정에 다소곳이 매달렸던 헌트는 2편에서 수십미터 아래의빌딩으로 공중낙하를 한다. 심지어 영화 플롯과 관계없는 오프닝에서는 맨손 암벽타기의 아찔함을 보여주고, 오토바이 앞바퀴를 든채로 스핀하는가 하면, 오토바이 옆으로 내려 매달린 채로 질주를 하기도 한다. 게다가 오우삼 영화 아니랄까봐 쌍권총과 비둘기들도 나온다. (비둘기는... 정말 경탄을 자아낼 정도로 꾸준히 나온다. 보신 분들은 동감하실 것임)
결론적으로 그 살상률. 1편에서는 초반 IMF 팀의 몰살까지 포함해도 모든 사상자가 예닐곱명 정도지만, 2편에서는 어림으로 줄잡아도 2,30명이 죽는다. (물론 대부분 이던 헌트에게 당하는 악당들이다.) 발사된 총알 수를 비교하면 더 볼만할 거다. 2편이 1편의 한 몇 천배는 더 되는 총알을 사용했을걸?
2편의 핵심은 바로 이 장면이다.
헌트가 휘젓는 액션의 비중은 늘었지만 이는 전체적인 액션의 비중 또한 늘어난 것이 되므로, 오히려 1편보다 팀플레이의 배경이 더 잘 마련되기도 했다. 1편에 연이어 출연한 빙 레임즈가 연기하는 루더 스티켈은 1편과는 달리 로켓 탄두로 헌트를 엄호까지 하면서 조금 더 과감한 액션을 펼치기도 한다.
2편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1편에 비해 머리쓰기가 줄고 단순한 액션만이 남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하는 1편에 비해 스릴러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을 '원작에 더 근접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티비 시리즈에서 IMF 팀은 늘 알려져 있는 적들을 상대했다. 설정을 따지면 원작과 더 가까운 것은 1편이 아니라 2편이다. 오히려 1편이 평균보다 더 머리쓰기 요소가 가미된 영화였던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2편의 단순한 플롯과 액션이 1편과 대칭되는 위치에서 빛을 더 발하는게 아닌가 싶다. 같은 설정의 두 영화가 에스피오나지 스릴러와 스파이 액션이라는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으니까. 아마 이 영화들이 시리즈가 아닌 각각 다른 영화로 만들어 졌다면, 지금만큼 이 두 편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5월, 드디어 [미션 임파서블 3]이 개봉한다. aka M:i:III 이라는 타이틀로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여러 감독들이 거명되었고 최종 낙점된 사람은 J.J 에이브람스. 극영화로는 생소하지만 티비 시리즈물에서는 [앨리어스]와 [로스트]라는 스매시 힛트 시리즈를 만들어낸 마이다스 크리에이터다.
그는 [앨리어스] 시리즈 초반을 통해 스파이 판타지에 인간적인 갈등의 대립관계를 잘 녹여내는데 일가견을 이미 보였던 전례가 있다. 연출로서는 앨리어스의 시즌 파일럿과 피날레를 맡으면서 여간한 극영화 뺨치는 연출력을 보인바도 있고.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시드니 브리스토는 냉철하지만, 그만큼 인간적인 스파이였다. 그리고 오피셜 홈페이지에 나온 인터뷰에서 J.J는 3편을 통해 이던 헌트를 스파이가 아닌 한 인간, 한 남자로 그리고 있다고 술회했다. 웬지 에이브람스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팔팔해진 것처럼 보인다.
출연 배우들도 쟁쟁하다. 네임 밸류로는 톰 크루즈에 비해 떨어지지만 양질의 배우들이 주루룩 포진해 있다. 퇴폐적인 느낌의 아일랜드 출신 배우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매트릭스의 세례 요한 로렌스 피시번,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빌리 크루덥, 액션 하나는 제대로 보여줄 매기 큐까지. 물론 1편처럼 이들이 소모성 역할이 된다면 실망스럽겠지만, 톰 크루즈의 스타 에고가 앙상블 플레이 연출에 능한 J.J. 에이브람스에게 조금만 양보를 한다면 그것 만으로도 멋진 장면들이 많이 나올 듯하다.
무엇보다도 기대되는 배우는 악당을 맡는 연기파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명민하고 날카로운 악당이 아닌 사장님 타입의 음흉한 모습부터가 기대를 모으게 한다. 호프먼이 만만치 않은 악당으로 그려질 예정이라는 점은 이미 얼마전 공개된 예고편에서부터 두드러진다.
1분 30초 가량의 예고편 절반을 차지하며 등장하는 호프먼. 온 몸이 꽁꽁 묶인 상태에서 측은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는다.
"자네..여자친구나 부인이 있나?...어디 있든 그녀를 찾아내서...
손 좀 봐주고... 그리고 그녀 앞에서 너를 죽여주지."
갈등의 구조가 팽팽해 보이는 예고편 오프닝. 하지만 남은 30여초간은 2편 못지 않은 엄청난 액션의 성찬이 펼쳐진다. 고층 건물서 점프하는 이던 헌트. 다리에서의 총격전. 결국 예고편과 스탭/캐스팅의 분위기만으로 맘대로 가늠하자면 1편과 2편의 적절한 믹스가 이뤄지는 작품이 나오겠다는 생각.
아무튼 5월이면 그 결과가 공개된다. 잘 만들어져서 이 시리즈가 [에이리언]처럼 감독들의 역량에 따라 각각의 개성을 갖는 장수 시리즈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