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만땅. 7편까지.
새해 들어서 케이블 티비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틀어주는 영화가 바로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제가 극장에서 본 마지막 해리 포터 영화이기도 하고요. 책으로도 본 것은 '불사조 기사단'까지 였습니다.
지난해 개봉한 '혼혈 왕자'를 안봤던 이유는 간단하게 영화버젼 '불의 잔'이나 '불사조 기사단'이 그다지 재미 없었기 때문이죠.
일단 '불의 잔'은 아이들 동화같은 분위기로 시작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가 점점 어두움의 그림자가 정말 진하게 드리워진 작품이었습니다. 심지어 학생중에 사망하는 애도 나오고요. (근데 이때 죽은 로버트 패틴슨은 최근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불멸의 뱀파이어가 되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복합적인 분위기를 한데 넣다보니 소설은 본격적으로 분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영화버젼도 엑기스만 뽑아 쫓아가느라 헉헉댔죠. 확실히 소설은 자세한 설명이 함께 있어서 그런지 좀 차분하게 가는 맛이 있습니다.
'불사조 기사단'은 책은 재밌었어요. 이때 정말 아무 정보도 모르고 보는 지라 이렇게 큰 음모와 비극이 더 남았구나...라는 경탄이 있었는데, 정작 영화 버젼은 '불의 잔'보다 더 헉헉거리면서 영화를 쫓아 갔습니다. 이때부터 불사조 기사단, 해리 포터 주변의 응원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소개해야 할 캐릭터들도 많아졌고요. 과유불급의 정보들이 넘쳐나는 플롯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극장에서 '불사조 기사단'을 봤을때는 좀 지루하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돌로레서 엄브릿지의 에피소드가 전체랑 너무 따로 논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런데 가끔 케이블에서 재방하는 것을 보다보니 '불사조 기사단' 자체의 재미를 떠나서 그 뒷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DVD로 빌려 볼까, 책으로 볼까...하다가 집에서 VOD 서비스로 판매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후다닥 봤습니다. 와, 지역 케이블 VOD가 이렇게 좋은 건줄 몰랐습니다.
'혼혈 왕자'의 러닝타임은 거의 3시간. 책의 볼륨도 엄청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긴 하지만 그래도 헉헉거리면서 그럭저럭 쫓아 갑니다. 영화의 큰 줄기는 두 갈래. (당연히) 볼드모트 제압을 위한 단서들의 추리와 두번째는 호그와트 학생들의 연애질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영화버젼에서 두 가지를 나름 다 잘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볼드모트의 부활 이후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가 더해졌고, 아이들의 연애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에도 뭔가 소화가 안된 마냥 계속 그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춘기 애들이 억누를 수 없는 연애 감정은 소소하게 볼 재미가 납니다. 무엇보다도 아역 배우들이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그 대견함(?) 같은게 작용하기도 하겠죠.
사실 전체적인 재미는 '불사조 기사단'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클라이막스에서 덤블도어의 죽음은 아무래도 전작에서 시리우스 블랙이 죽었을때와는 큰 차이가 있더군요. 시리우스 블랙은 해리 포터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캐릭터 였지만, 덤블도어는 해리포터의 모든 독자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의 순간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던 '불사조 기사단'에 비해 더욱 장엄하고 숙연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영화는 덤블도어의 계승자인 해리 포터가 이제 마지막 남은 한 편이 단순한 학교 이야기가 아닐 것임을 예고하며 끝나죠.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봤습니다만 극장에서 못 본게 후회될 정도는 아녔습니다. 하지만 '혼혈 왕자'를 보고난 뒤 드는 생각 하나는 확실하더군요. '죽음의 성물'을 빨리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요.